리폼한 폐품 즐거운 환생
양이수 강사의 '에코 디자인' 수업을 듣는 부산대 조형학과 학생들이 폐품을 활용해 만든 작품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단가영 씨가 만든 캔 따개 반지.(왼쪽)
못 쓰게 된 모기장으로 만든 손지원 씨의 가방.(오른쪽)
우리는 낡디낡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폐품이었습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폐품 신세는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영화관과 세탁소, 공사장, 공장, 체육관 등지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즐거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언젠가 버려질 거라는 사실을.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할 것이라는 그릇된 기대감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생이잖아요.
불행은 예기치 않게 닥쳤습니다. 새로운 녀석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 우리는 졸지에 쓸모없는 쓰레기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막상 버려지는 처지가 되고 보니 앞이 막막했습니다. 아직은, 어딘가 쓰임새가 있을 멀쩡한 몸뚱어리인데…. 갑자기 서글퍼지더군요.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지루한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눅진한 공기처럼 우리 마음도 끝을 모르는 듯 가라앉았습니다.
서로 하늘만 쳐다보면서 신세 한탄을 늘어놓고 있을 그 무렵. 싱그러운 젊음으로 빛나는 대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네요. 양이수(31) 강사의 '에코 디자인' 수업을 듣는 부산대학교 조형학과 섬유·금속 전공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품에 안겨 도착한 곳은 학교 작업실.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려졌습니다.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요. 궁금증이 하늘을 찔렀지만, 꾹 참고 묵묵히 지켜봤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그야말로 환골탈태했습니다. 낡은 영화 필름과 세탁소 옷걸이 일행은 김소연(21) 씨의 손을 거치면서 근사한 조명등으로 새 모습을 갖췄고, 너트 밑에 끼우는 둥글고 얇은 쇠붙이인 와셔 형제들은 오효원(20) 씨를 만나 목걸이와 귀걸이로 화려하게 변신했습니다. 이예란(22) 씨가 눈을 반짝이며 둘러메고 갔던 샌드백 군은 근사한 가방으로 다시 태어났고요, 공장 한편에 모여있던 폐고무 친구들은 중국에서 유학 온 유박(26) 씨의 솜씨 덕분에 멋진 패브릭풍 스탠드로 거듭났습니다. 단가영(21) 씨 품에 안겼던 캔 따개 자매들은 예쁜 반지와 귀걸이가 됐고요, 손지원(20) 씨는 낡은 베란다 블라인드 아저씨를 시크한 가방으로 변신시켰습니다. 참, 파일 아주머니는 이원주(21) 씨가 전등으로, 신발끈 가족은 이윤정(20) 씨가 이국적인 팔찌로 새롭게 꾸며줬습니다. 이렇게 새 인생을 연 우리은 문화매개공간 '쌈'에서 전시되기도 했고요, 일부는 새 주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제2의 인생'을 선사해 준 양 강사님과 학생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런데요, 잘 둘러보니 우리처럼 새 삶을 얻은 친구들이 곳곳에 퍼져있었습니다. 그 친구들 역시 멋진 새 삶을 살고 있답니다. 우리 같은 '폐품'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은인들과 그들에 의해 새로 태어난 친구들을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글=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사진=최성훈 기자 noonwara@
작품사진 부산대 조형학과 제공